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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정자동(亭子洞)]
이 지역이 조선 중기 이후 왕족인 전주이씨의 세거지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제 9대 임금 성종의 아들(12남) 무산군(茂山君)의 제 5자인 태안군(泰安君) 이팽수(李彭壽)[1490~1525]의 묘역과 그 자손들이 터를 잡았다. 태안군의 증손이 되는 이경인(李敬仁)[1575~1642]은 이천부사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 변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소일하였다. 그 후 그가 즐기던 '정자가 있는 마을'란 뜻의 '정자리'가 되었다.

동의유래

불곡산의 "불"자와 정자동의 "정"자를 합해 "불정동"으로 불리다가 행정동과 법정동(정자동)의 명칭이 상이하여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하여 2001. 1. 1일자로 정자 3동으로 행정동 명칭이 변경되었음


동의연혁

  • 1895. : 광주군 돌마면
  • 1973. 7. 1 : 성남시로 승격
  • 1975. 3.17 :돌마출장소 설치
  • 1989. 5. 4 :택지개발 예정지구 지정
  • 1991. 7. 1 : 분당출장소 개소
  • 1991. 9.17 : 중원구에서 분당구로 분구
  • 1993. 6.35 : 분당동에서 내정동으로 분동
  • 1995. 3. 7 : 내정동에서 정자동으로 분동
  • 1996. 1.15 : 불정동 개소
  • 2001. 1. 1 : 정자3동으로 명칭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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