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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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유래
[금곡동(金谷洞)]
금곡(金谷)' 지명은 토박이말 '쇠골', '쇳골'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이 과거 금(金)을 채취하는 광산이 있어서 쇳골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곡리(金谷里)라고 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로 이 지역에서 금이 생산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않는다.
금곡(金谷)' 지명은 토박이말 '쇠골', '쇳골'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이 과거 금(金)을 채취하는 광산이 있어서 쇳골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곡리(金谷里)라고 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로 이 지역에서 금이 생산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않는다.
동의 유래
금곡(金谷)은 토박이말 '쇠골'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곳 '쇠골'마을의 유래에 대하여는 옛날 이곳에서 금을 채굴하였으므로 쇠골=금곡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지 촌로들의 증언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쇠골=금곡이라 불리우는마을은 수십개 지역에 달하고 있으나, 쇠는 지역에 따라서 소(牛), 새(동쪽:예, 샛바람), 새(新), 사이(間), 수렁 등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쇠=새로 사투리에서 혼용되면서 새=해로 사용되어 새=일(日)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곧 닷새(5日), 엿새(6日)의 예와 같다. 또안동 권씨 참의공파 족보에는 '쇠골'을 '쇠곡', '쇄곡'이라 하였는데, 이는 '쇠골'의 한자식 차음표기로 보인다. 자연부락인 '샛골=쇠골'이거나,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사이골=새골'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동의 연혁
- 1970년 3월 6일 : 광주군 낙생면사무소
- 1971년 9월 13일 : 경기도 성남출장소 낙생지소
- 1973년 7월 1일 : 성남출장소가 성남시로 승격에 따라 금곡동으로 개칭
- 1988년 7월 1일 : 성남시 중원구 금곡동 사무소 개소 (성남시 중원구에 편입)
- 1991년 5월 27일 : 분당출장소 구 승격에 따라 분당구 금곡동
- 2005년 3월 21일 : 분당구 금곡1동 분동 개소
- 2007년 9월 1일 : 동사무소-> 주민센터로 명칭 변경
- 2008년 9월 22일 : 분당구 금곡동으로 명칭 변경
- 2017년 9월 1일 : 주민센터 - 행정복지센터로 명칭 변경